수서비리 사건은 1991년에 발생한 ‘수서지구 택지 특혜 분양 사건’을 말한다. 1989년 노태우 정부는 주택 200만호 건설을 추진하면서 서울 강남구 수서동, 일원동 일대를 택지개발 지구로 지정했다. 당초 이 부지는 주공아파트가 건설될 것으로 예상됐지만 20여개 단체에 택지공급이 이뤄지면서 특혜 의혹이 불거졌고 한보그룹과 정치권이 연루된 사실이 밝혀진 바 있다. 이후 구룡마을에 대한 개발 목소리는 수년간 잠잠해졌고, 1996년 경 건설사 중원이 등장하면서 토지주를 중심으로 한 민영개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당시 중원의 J회장은 1000억원 상당의 토지를 매입한 후 1200여 세대의 주민들에게 입주권을 주겠다고 제안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서로 의견을 맞춰오던 중원과 주민자치회는 1999년 합의약정서를 체결하는데 이른다. 주민자치회는 약정서에 따라 자경대를 꾸리고 마을을 정비하는 한편, 투자 및 투기를 노리고 마을에 들어오는 외부인을 막기 위해 노력했다. 대규모 재개발을 기대하며 돈 냄새를 맡은 투기꾼들은 마을 형성 초기부터 유입되기 시작했다. 이들은 마을에 직접 거주하지는 않고 대신 살 사람을 구해 개발 후 이익을 얻고자 했다. 이 때문에 주민자치회는 주민증이라는 것을 발급해 마을의 전출입을 관리하고 투기꾼들의 거주를 막고자 했지만, 훗날 이 주민증이 개발 후 입주권을 상징하며 수천만원에 거래돼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구룡마을 주민자치회 관계자는 “이미 1988년 즈음 가구 수가 크게 늘어나면서 마을에 투기꾼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투기를 목적으로 들어온 사람들은 대부분 직접 살지는 않고 다른 사람을 대신 거주하게 했다”라며 “그러다 보니 세입자들이 주인에게 얘기하지 않고 자기 이름으로 주민등록을 해버리는 경우도 있고, 한 집을 두세명에게 팔아서 서로 싸우는 경우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투기꾼들의 유입도 많았고 세대수가 워낙 늘어나다 보니 개발이 어렵다는 얘기가 나왔던 것으로 안다”라며 “그래서 저희가 빈집을 폐쇄할 수 있는 권한은 없지만, 24시간 잠도 안 자고 입에 풀칠만 하고 밤낮으로 교대하면서 빈집에 사람이 못 들어가게 막았다. 당시에는 민간개발이 이뤄질 것 같았고 그런 꿈에 부풀기도 했다”고 말했다.
구룡마을 개발 추진 과정은 쉽지 않았지만 개발사 중원이 2003년 군인공제회로부터 650억원의 투자를 유치하는데 성공, 개발 부지의 절반 가까이를 사들였다. 이후 강남구청에 수차례 도시개발구역지정 제안서를 제출한 끝에 2009년 강남구의회가 민영개발안을 가결하는데까지 진척이 이뤄졌다. 하지만 2010년 강남구 신연희 구청장이 취임하면서 국면이 전환됐다. 신 구청장은 SH를 통한 공영개발이 타당하다는 서울시의 의견을 수용했고 한 발 더 나아가 시가 제안한 환지 혼용방식에도 제동을 걸고 나섰다. 환지방식이란 토지주에게 보상금 대신 개발구역 내 조성된 땅을 주는 보상법을 말하는데, 강남구는 토지 보상을 통해 개발부지를 모두 수용한 후 사업을 진행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이와 관련 신 구청장은 2013년 3월 긴급기자회견을 열기도 했으며 4월께 다시 입장문을 내고 “일부 환지방식을 추가해 토지주들이 원하던 민영개발 방식으로 변경한 결정은 당초 서울시가 발표한 공영개발 취지에 맞지 않으므로 반대한다”라며 “구룡마을 정비에 환지방식을 적용할 경우, 투기가 극심한 시기와 개발이 한창 논의될 시점에 대규모 토지를 매수한 토지주 등에게 개발이익이 귀속됨은 물론, 양도소득세 미부과로 최소한의 개발이익 환수마저 불가능하게 된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