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의외로 개발 방식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 주민들도 적지 않았다. 그들은 그보다는 개발 방향에 따라 당장의 생활이 어떻게 변하게 될까에 큰 관심을 갖고 있었다. 임대라면 임대료와 관리비는 어떻게 마련할지, 분양이라면 추가분담금은 구할 수 있을지, 개발이 이뤄지는 동안은 어디서 생활할지, 이웃과 헤어진다면 새로운 곳에서의 삶은 또 어떠할지. 개발 열풍과 함께 마을에 투기꾼이 몰려든 것은 사실이라는 증언도 들을 수 있었지만, 생활 터전을 잡고 살아온 주민들을 보상만 바라는 욕심쟁이로 단정 짓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였다. 의외로 몇몇 주민들은 구룡마을에 그대로 머물기를 원하기도 했다. 많게는 30년 이상 마을에 살아왔던 주민들은 익숙한 곳을 떠나기보다 친근한 얼굴들과 서로 부대끼며 살아가길 바랐다.
말하자면 새로 지은 아파트는 지금보다 따뜻하고 쾌적하겠지만, 일부 주민들은 그것을 ‘성냥갑’처럼 사방이 막힌 갑갑한 곳이라고 표현했다. 70대 전후의 노년층이 대부분인 구룡마을 주민들에게 이웃의 안부조차 물을 수 없는 새집은 넓고 깨끗한 감옥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구룡마을 2지구에서 만난 주민은 “개발이 아니라 주변 환경 정리해주고 집을 수리하면서 살 수 있게 해준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은 없다. 여기는 우리들 제2의 고향 아닌가”라며 “저 같은 사람들, 70살이 넘은 사람들이 성냥갑 같은데 들어가서 뭐하나. 정부에서 수리해서 살게만 해준다고 하면, 반대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동네 분들 대부분 환영할 것”이라고 말했다. 마을을 생활의 터전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은 ‘로또 개발’ 같은 허황된 꿈이 아닌 오늘 하루의 안녕을 희망하는 듯 보였다. 그렇게 마을을 떠나고 싶지 않은 사람들도 여기에 있었다. 그것이 개발 열풍이라는 편견에 갖혀 우리가 볼 수 없었던, 또는 보지 않았던 구룡마을의 이면 중 하나다.
구순을 넘어선 백발의 주민은 “개발이 되면 내보내겠지, 내보내면 나가야지”라고 푸념했다. 이어 “근데 그런 게 아니라면 굳이 안 나갔으면 좋겠다”라며 “사람은 사람 소리를 듣고 살아야한다. 다른 이웃들도 외로우면 못 산다고 한다. 임대주택으로 선이주한 어떤 사람도 거동이 어려운데 높은 층에 살다보니 사람을 못 만난다고 한다. 마음 같아선 이렇게 살다가 하늘로 조용히 가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