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제 뭘 해야 하는 걸까’
그는 살아남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였다. 모텔 객실청소, 편의점 알바, 전단지 알바 등 면접을 볼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돌아다녔다. 아쉽게도 그를 선택한 곳은 단 한 곳도 없었다. 살기 위해 옷과 생필품을 훔친 것이 화근이다. ‘좀도둑’, 사회가 그를 바라보는 시선은 좀도둑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전과자라는 주홍글씨는 그가 사회에 조심스레 발을 딛는 것 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금전적으로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자 거리의 삶이 주는 무게가 그의 신체 곳곳을 짓누르기 시작했다. 결국 스물 넷, 젊은 나이에 당뇨를 달고 살게 됐다. 치료가 필요했다. 돈이 필요했던 그는 당시 유행하던 ‘지라시 대출’에 손을 댔다. 지라시 대출은 명함에 적혀있는 전화로만 대출을 할 수 있는 불법사채(미등록 대부업)다.
급한 불을 끄고자 빌린 대출은 더 큰 화를 불러왔다.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나는 사채 빚은 삶에 대한 의지를 꺾어버리기에 충분했다. 서서히 늘어나는 숫자는 그의 삶을 움켜쥔 채 놓아주지 않았다. 그는 더욱 더 깊고 어두운 곳으로 숨어들어갔다. 그는 그렇게 사회와 단절된 채 은둔생활을 이어갔다.
쓰레기통에 처박힌 랍스터와 고기 그리고 나
그는 거리 곳곳에 있는 쓰레기통을 뒤적거리며 하루를 버틸 음식을 찾았다. 배고픔은 도저히 견딜 수 없었다. 버려지는 음식의 질은 지역마다 천차만별이다. 주로 비싼 음식이 버려지는 곳은 강남역 인근이다. 운이 좋은 날에는 이름 모를 누군가가 먹다 버린 랍스터 조각과 고기를 발견할 수 있다.
비싼 음식을 찾았다는 기쁨도 잠시, 당뇨가 그의 발목을 잡는다. 버려진 쓰레기를 먹으면 먹을수록, 혹은 굶으면 굶을수록 손끝과 발끝이 이상하리 만큼 저리다. 밥다운 밥이 먹고싶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쌀밥과 건더기가 푸짐하게 올라간 국이면 됐다. 임금님 수라상 같은 식사는 바라지도 않았다. 이를 위해선 결국 ‘돈’이 필요했다.
‘꼬지’(노숙인이 구걸을 칭하는 은어)하기 좋은 장소는 이미 다른 노숙인이 터를 잡고 있었다. 괜히 그 근처를 어슬렁 거리다 욕과 발길질을 보기 좋게 얻어먹었다. 텃세다. 노숙인들의 텃세는 생각보다 드셌다. 구걸하기 안성맞춤인 장소는 그들이 가진 몇 없는 벌이 수단이자 노른자 땅이다. 이를 뺏기지 않으려 더욱 거세게 반발한 것이다.
”계속해서 쓰레기를 먹고 살 순 없잖아요?”
그는 노숙인의 텃세를 피해 젊은 이들이 많은 번화가 ‘건대입구’로 향했다. 처음에는 꽤 벌이가 괜찮았다. 젊은 이들이 주는 동전, 직장인이 주는 지폐는 진눈깨비 쌓이듯 조금씩 쌓여갔다. 운이 좋은 날이면 하루에 몇 만원이라는 돈이 수중에 쥐어졌다. 10년도 더 된 휴대폰 요금을 내고 가끔 밥을 사먹을 수 있는 정도. 그러나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는 평소와 다를 것 없이 젊은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구걸을 시작했다. 늘 그랬듯 술에 취해 담배를 피고 있는 청년들에게 다가갔다. 구걸을 위해 말을 걸자 둔탁한 소리와 함께 고개가 뒤로 젖혀졌다. 그러곤 바닥에 내동댕이 쳐졌다. 술에 취한 젊은 사람이 그를 무차별적으로 폭행하기 시작했다. 손 쓸 틈도 없이 그는 그렇게 맞고만 있었다.
지옥 같은 시간이 지나고 그를 폭행했던 젊은 청년은 유유히 사라졌다. 멀어져가는 젊은 청년을 보며 그는 다급히 경찰에 신고했다. 그러나 신고를 해도 별 소득은 없었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범인이 잡혔다는 소식이 들리지 않자 알 수 없는 자괴감이 들었다. 자신이 노숙인이라 일이 이렇게 된 것이라는 슬픈 생각에 잠겼다.
동전과 바꾼 성(性)...“동전이 없으면 그날 또 굶어야 하잖아요”
그는 숱한 폭행에도 건대 입구를 벗어날 수 없었다. 돈이 뭐기에. 그는 무작정 구걸하는 것 보다 다른 것을 선택했다. 자신의 성과 동전을 맞바꾸는 성매매를 선택한 것이다. 남들이 자신에게 돌팔매질을 한 대도 어쩔 수 없었다. 이미 버림받는 것에 익숙해진 그다. 결국, 그는 스스로를 갉아먹기 시작했다.
육체와 영혼이 망가지면 망가질수록 동전은 쌓여만 갔다. 그는 자그마한 그 동전들로 하루하루 버텨냈다. 하루는 젊은, 또 하루는 나이가 많은,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들과 동전 하나를 두고 한 침대에 남겨졌다. 그 시간이 6개월이나 지속됐다. 그렇게 아무런 감정 없는 인형과도 같은 시간이 끝남과 동시에 이름 모를 누군가에게 화대(花代)로 동전을 요구했다. 평소와 다를 바 없었다. 그러나 결과는 평소와 달랐다. 그는 또 이름 모를 젊은이에게 무자비하게 폭행당했다.
“화대로 요구한 동전? 주기 싫으면 못주겠다 하고 끝내면 되는데 왜 나를 막 때리는지 모르겠어요.”
[기사 더 보기]